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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엠알코퍼레이션 대표는 스스로를 "편식하던 인간"이었다고 했다. 30년 동안 반도체 분야에만 종사하다 보니 지식도 생각도 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반도체 증착 공정에서도 MFCMass Flow Controller (질량유량제어기) 분야 전문가다. MFC는 가스 유량을 정밀하게 제어해 원하는 농도와 두께의 박막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다. 박 대표는 "반도체 제조의 거의 모든 과정은 가스로 이뤄진다. 그 가스를 얼마나 정교하게, 얼마 황금성릴게임 나 안정적으로 제어하느냐가 공정의 성패를 좌우한다. MFC는 반도체 공정의 '심장'이라 불리지만, 동시에 가장 조용한 존재이기도 하다. 문제가 없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이 분야 전문가를 찾는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일본 계측 회사 호리바 HORIBA 그룹 계열사에서 MFC를 처음 접했고, 삼성전자 반도체 한국릴게임 부문 MFC 책임자로, 삼성전자 퇴사 후에는 일본 히타치 계열사의 MFC 사업부 기술 고문을 맡았다. 2017년 MFC 국산화 기치를 걸고 엠알코퍼레이션을 창업했다. 박 대표가 삼성전자를 떠난 지 올해로 13년째다. 이유는 아주 사소하고, 아주 현실적인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산과 인연을 맺은 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다이야기고래 그를 가장 지치게 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었다. 보고서였다. 개발직이었지만 매주 주간 보고서를 써야 했다. 표준화와 기술 개발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인데, 조직은 매주 결과를 요구했다. 아들과 함께 호주 그레이트오션로드 트레킹하는 박 대표. 그는 가족과 트레킹하는 것을 좋 릴게임추천 아한다고 했다. "일주일마다 새로 쓸 게 있겠습니까. 매주 주간 보고서를 쓰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농담처럼 '이것 때문에라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곤 했죠."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TV에서 '영상앨범 산'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이상하게 산에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 릴게임종류 었다. 그는 다음 주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했다. 산에 올라 비로소 '옆'을 보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머릿속이 개운했어요. 회사 생각도, 보고서 생각도 사라진 거예요. 그때 처음 '아, 이게 힐링이구나' 느꼈어요." 이렇듯 산을 찾기 시작한 건 위대한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산은 취미가 아니라 도피처가 됐다. 그리고 곧 습관, 중독이 됐다. 금요일이면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출근했다. "오후 6시에 퇴근하면 바로 산으로 갔죠. 반차 쓰고 가는 날도 많았고요." 동료들은 "저 미친놈, 또 등산복 입고 왔다"고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4~5년을 거의 매주 산에 올랐다. 삼성전자 재직 말기 그는 일생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1년 뒤 담도암 판정까지 받았다. 두 번의 큰 수술, 다행히 전이는 없었고, 수술과 치료로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차폐실에 갇혀 방사능 치료를 받으면서 제 인생을 처음으로 돌아봤어요.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았지요. 그 시기를 지나며 산은 단순한 탈출구가 아니라 생존의 이유가 됐지요." 그는 삼성전자 퇴사 후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옆을 보게 됐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그 무렵, 산은 그에게 또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이전의 산이 탈출구였다면, 이 시기의 산은 그에게 회복의 공간이었다. 치료 이후 처음 산에 올랐을 때,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새삼 실감했다. 숨이 가빴고, 예전 같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박 대표가 기자와 인터뷰 하는 모습. 박 대표는 암 치료 이후 본격적으로 산행을 했다. 그의 산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산은 단연 지리산이었다. "지리산은 100번쯤 갔을 겁니다. 지리산에 가면 심장이 차분해지고, 숨이 고르게 돌아왔어요." 그는 "한국의 웬만한 산은 다 가봤다"고 했다. 국내 산이 익숙해지자 그의 발걸음은 해외로 향했다. 네팔 히말라야, 유럽 알프스, 로키 산맥까지. 지리산에 들면 마음이 편해졌다 박 대표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의 '아라콜패스(해발 2000m에서 출발해 3900m까지 오르는 총 55㎞ 트레킹)'였다"며 "정말 좋았다"고 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날카로운 설산, 그는 그곳에서 반도 체 현장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는 갑상선암 수술 이후 고산지대에 가면 체온 조절이 어려워 저체온증 위험과 싸워야 했지만 산에 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산이 없으면, 제 컨디션이 먼저 무너집니다." 산은 그에게 휴식이 아니라 조율의 도구였다. 숨의 깊이, 심장의 박동, 다리의 반응. 산은 그의 몸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장치였다. 그는 그것을 반도체 공정의 언어로 풀어냈다. 네팔 히말라야에서 그는 '고도'라는 변수를 처음 몸으로 느꼈고, 유럽 알프스에서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산, 즉 반도체 공정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고백은 담담했지만 깊었다. 자신의 별명인 '독종'의 시대를 지나, 몸의 경고를 겪고, 산이 들어와 삶이 됐다. 이제 산은 그의 일상이고, 철학이며, 미래로 자리 잡았다. 그는 산에서 배운 원리를 삶과 일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회의도, 결정도, 인간관계도 한 박자 늦췄다. 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고, 여지를 남겼다. 그 변화는 조직 운영에도 스며들고 있었다. 또 하나의 삶, 달리기 산이 삶의 일부가 된 이후, 박 대표의 일상에는 또 하나의 리듬이 더해졌다. 달리기였다. 산이 주말의 중심이라면, 달리기는 평일을 지탱하는 축이었다. 그는 산에 오르지 못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운동화를 신는다. 러닝머신이든, 실외 트랙이든,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몸을 움직이며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산에서 배운 호흡과 리듬은 달리기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빠르게 시작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그는 달리기를 기록 경쟁으로 보지 않고 몸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의 하루 루틴은 단순하지만 철저하다. 하루 10㎞ 러닝 또는 1시간 러닝. 그리고 30~40분 근력 운동을 한다. 주중에는 회사 근처 실내 체육관에서, 주말에는 석촌호수 둘레를 돈다. 석촌호수 한 바퀴는 약 2.5㎞. 여섯 바퀴를 돌면 15㎞다. 그는 늘 같은 방향으로, 같은 리듬으로 뛴다. 박 대표는 국내 춘천마라톤과 보스턴, 시드니 같은 세계적인 마라톤 대회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기록보다는 완주가 목표다. 산과 마찬가지로, 마라톤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과정의 축적이라고 했다. 그의 달리기는 개인의 취미에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가 그 리듬에 들어왔다. 그는 직원들에게 달리기를 권했다. "같이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현재 박 대표의 회사에는 정직원 17명이 있다. 그중 7명이 정기적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5㎞, 10㎞, 하프코스. 참가비는 회사가 전액 지원한다. 그는 그것을 복지가 아닌 투자라고 말한다. 박 대표는 위기 순간마다 직원들에게 '아트라베시아모(attraversiamo·이탈리아어로 '함께 건너자')'라고 한단다. "체력은 사력입니다. 직원이 건강해야 회사도 건강해집니다." 박 대표는 최근 청계산에서 광교산을 잇는 25㎞ 구간을 종주했다. 종주는 러닝이나 마라톤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고통이었다. 발바닥은 점점 감각을 잃고, 허벅지는 굳어갔다. 속도를 낼 수 없다는 점에서 심리적 압박도 컸다. 그는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했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 하지만 종주에 성공한 뒤 남은 것은 결코 후회가 아니었다. "12시간 걸렸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도착했을 때 남은 감정은 오직 성취감 하나였어요. 아! 내가 아직 살아 있구나." 박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조용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엄홍길휴먼재단, 대한적십자, 아동원, 어린이 재활치료, 희귀병 학생 치료를 위한 기관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후원 대상은 늘 어린이다. "넉넉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하고 나면 그냥 마음이 편합니다. 50~60대는 정리의 시간이고,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있잖아요." 그에게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의 모습이 느껴졌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