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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해오름도서관 서가에 선 이명희 한책추진단 운영위원장. 2025 매니페스토 최우수상 수상‘한 책’ 선정 한해동안 과정 치열 지난해 12월 한국매니페스토본부가 ‘2025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문화정책 콘체르토’에서 주민주도형 문화 거버넌스의 혁신적 모델을 제시한 성북구(구청장 이승로) ‘한책추진단’ 사례에 최우수상을 수여했다. 성북구의 ‘한 책’ 운동은 구민들이 한 해 동안 치열한 토론을 거쳐 문학과 비문학 그리고 어린이책 각 한 손오공게임 권을 선정함으로써 주민들이 책을 좀 더 가까이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자 민주적 의사결정을 체험하는 ‘생활 거버넌스’의 정수로 꼽힌다. 이명희 한책추진단 운영위원장을 만나 인공지능(AI)이 모든 것을 요약하고 디지털의 속도와 효율이 강조되는 시대에 왜 종이책을 매개로 ‘느린 독서’와 ‘치열한 토론’을 지켜가는지 그 이유를 들었다. “도서관은 책 저장소 아닌 야마토게임 민주주의 훈련장” 이명희 운영위원장에게 활동의 근거지인 도서관의 정의를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책을 보관하고 대출·반납하는 시설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마주 앉아 서로를 ‘환대’하며 성숙한 어른으로 함께 성장해나가는 ‘지역문화 거점’이자 ‘사유의 연결망’”이라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책은 사람을 모으는 매개체일 뿐 진짜 본질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오리지널골드몽 대화와 관계의 회복에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성북구는 인구 42만 명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최다인 17개 구립도서관을 운영하는 ‘도서관 도시’다. 대출 이용자는 성북구민의 21%인 9만2058명에 달하며, 연간 이용자 수는 전체 구민 수의 3.2배인 137만 명을 넘는다. 도서관에 등록된 책 읽기 동아리도 200개를 훌쩍 넘는다. 이는 도서관이 바다이야기 구민의 일상 속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증명한다. 문인들의 ‘문화 DNA’를 이어받아 미국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며 출발했지만 15년째인 이 운동은 이제 독보적인 노하우를 갖췄다. 이 위원장은 그 토대에 지역의 역사적 토양이 있다고 설명한다. “성북구는 신경림 시인, 이경자 소설가 등 수많은 문인이 거주하며 흔적을 많이 남긴 곳입니다. 이 백경게임랜드 분들의 ‘문화 디엔에이(DNA)’가 주민 주도 독서 문화를 일구는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하러 오고 비슷한 시도를 하지만 성북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위원장은 ‘신뢰를 충분히 쌓을 만큼 오랜 기간’을 꼽았다. “행정 인력이 처리하면 일주일이면 끝날 일을 주민 주도로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한 달 이상을 기꺼이 기다려주는 식입니다. 이런 과정을 오랜 기간 견뎌낸 ‘비효율의 가치’라고 할 수 있죠.” 그는 구청과 성북문화재단 그리고 산하 도서관들은 주민에 대해 ‘지원은 하되 개입은 하지 않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왔다며 이러한 정책적 지지가 주민들에게 ‘우리가 주체’라는 강력한 자부심을 심어줬고 성북만의 자산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AI 시대를 거스르는 ‘느린 토론’ 인공지능(AI)이 빛의 속도로 정보를 요약하고 축약형 콘텐츠가 소비되는 시대에 한 권의 책을 선정하기 위해 한 해 동안 치열한 토론을 거치는 과정은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이 ‘느림’이야말로 사람을 성장시키는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AI는 결론을 주지만 토론은 과정을 줍니다.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내 오독을 인정하며 갈등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민주 시민으로서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 됩니다.” 2016년 당시 전문가 집단이 정치적 민감성을 우려해 반대했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선정 과정은 이런 과정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위원장은 “당시 토론회에서 한 고등학생이 당당히 손을 들더니 ‘우리 세대에 이것은 역사의 하나일 뿐이다. 왜 곪은 상처를 터뜨려 새살이 나게 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며 걱정하느냐’고 일갈하더군요. 결국 ‘소년이 온다’를 이해의 한 책으로 선정했죠.” 그리고 8년 뒤인 2024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이 책을 쓴 한강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 책 선정을 위한 기다림과 숙의 과정 이런 집단지성의 안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성북구 한책추진위원회는 ‘올해의 한 책' 한 권을 선정하기 위해 매년 방대하고 세밀한 과정을 반복해왔다. 지난해 주민과 독서동아리로부터 추천받은 후보 도서만 400권이 넘는데, 이를 도서관 담당자와 운영위원회가 머리를 맞대고 10권 전후로 압축한 뒤 다시 주민들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최종 후보 4권을 선정한다. 이어 최종 후보 작가와의 북콘서트 개최, 온·오프라인 투표, 그리고 최종 선정 토론회라는 긴 여정을 거쳐 비로소 문학·비문학·어린이책 각 한 권이 성북의 이름으로 선포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켜온 절차와 그 속의 깐깐한 선정 지표에는 다양성과 주제의 깊이, 세대 간 공감 가능성 등 사서와 주민이 함께 고민한 민주적 운영 체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은 권력도 나누고 순환시키는 ‘자발적 자정’ 한책추진단은 매년 회원 명부를 0으로 되돌려 기존 회원조차도 새 연간 회원으로 등록하도록 함으로써 참여 의지를 다시 확인한다. 운영위원장직은 작더라도 권력처럼 작용할까봐 2년 단임제를 철저히 지킨다. 다섯 번째 위원장인 이 위원장 역시 오는 3월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범한 주민으로 돌아간다. “한책추진위원회는 지원 주체인 구와 문화재단, 도서관의 관계에서 수평적 거버넌스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위원회 내부 운영 구조에서도 스스로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 덕분인지 주민 참여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단원은 2011년 126명으로 시작해 2025년에는 4176명에 이르러 33배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누적 참여 인원은 1만5931명에 이른다. 이명희 위원장은 말한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일수록 사람 사이의 온기 섞인 대화는 더 절실해집니다. 성북구 도서관은 앞으로도 주민들이 서로를 환대하며 함께 성장하는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지속될 겁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금요 섹션 서울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