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식 벌떼교회 목사가 24일 서울 서초구 예배당에서 목회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제자훈련 졸업식 날이면 서울 서초구 벌떼교회(장윤식 목사) 예배당 강단 앞에는 작은 반지가 놓인다. 약 2년에 걸친 훈련을 마친 성도들에게 목사가 직접 반지를 끼워준다. 교인들은 이 반지를 받은 이들을 ‘링 클럽’이라 부른다. 24일 국민일보와 만난 장윤식 목사는 “반지를 받는 순간부터 교회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벌떼교회는 제자훈련과 소그룹 공동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5~12
메이저릴게임사이트 명 단위 소그룹인 하이브(HIVE·벌집)가 교회의 기초다. 벌집 하나하나가 모여 공동체를 이루듯 성도들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 훈련받고 성장한다는 의미다. 장 목사는 “대그룹 예배와 소그룹 하이브가 함께 움직일 때 교회가 건강해진다”고 설명했다.
교회의 출발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 전쟁 직후 연세대 기독 학생들이 남태령
바다이야기릴게임 고개를 넘어와 천막을 치고 농촌 봉사를 하며 교회가 시작됐다. 당시 우면동은 서울이라기보다 시골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70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 목사는 “버스가 2시간에 한 대씩 다니고 택시 기사들도 위치를 몰랐던 곳”이라고 회상했다. 무속 신앙이 강해 교회에 다니는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머리채를 잡아 데려가던 시절이었다.
골드몽게임76년 선친 장영산 목사를 따라 아홉 살에 우면동에 들어온 그는 95년부터 공동목회를 시작했다. 당시 장 목사는 불과 27살이었다. 간암 투병으로 아버지가 목회를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전도사가 교회 사역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공동목회 3년 만에 선친이 63세로 별세했고 30살이던 그는 담임목사가 됐다. 당시 교인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수는 30명 남짓이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며 교회를 지켜야 했던 시간이었다. 장 목사는 “목회를 물려받았다기보다 닥친 상황을 감당해 나갔다는 표현이 더 맞다”며 “2002년 한일월드컵 무렵이 돼서야 아내에게 ‘이제 조금 정신이 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렇게 30년, 그가 붙잡아 온 목회 철학은 신약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검증완료릴게임 서 비롯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장 목사는 “사람의 만족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2006년 SH공사 개발로 우면동에 60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교회도 크게 변했다. 70~80명 수준이던 교인은 5~6배 늘었고 30~50대가 중심이 되는 젊은 공동체로 바뀌었다. 교회 이름을 강남교회에서 벌떼교회로 바꾼 것도 이 시기다. 우면산 주변 양봉 문화를 보며 자란 그는 벌의 생태에서 목회 원리를 찾았다.
벌들이 여왕벌 중심으로 움직이듯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중심에 둔다(Worship). 주일 예배에서 받은 은혜는 하이브 모임으로 이어져 삶 속에서 다시 나눠진다. 꿀을 찾아 나서듯 성도들은 각자의 일터와 관계 속으로 복음을 들고 나간다(Evangelism). 벌집 안에서 유기적으로 살아가듯 소그룹 안에서는 서로의 삶을 점검하고 돌본다(Fellowship). 벌들만의 소통 방식처럼 기도는 공동체를 연결하는 언어가 된다(Prayer). 꿀과 화분으로 생태계를 살리듯 제자훈련은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도록 돕는다(Discipline). 각기 다른 역할의 벌들처럼 성도들은 자신의 달란트로 교회와 이웃을 섬긴다(Service). 장 목사는 “이 여섯 가지가 벌떼교회의 뼈대”라고 말했다.
이 구조의 중심에는 제자훈련이 있다. 훈련을 마친 성도만 하이브 지도자로 세워지고 해외 선교에도 참여한다. 링 클럽 반지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공동체를 책임지는 지도력의 상징이다. 벌떼교회는 필리핀 우간다 캄보디아 등에 16개 교회를 세웠다. 장 목사는 “제자훈련과 선교는 교회의 두 날개”라고 말했다.
30년 목회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성도를 묻자 그는 고(故) 이영숙 권사를 떠올렸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이 권사는 새벽기도회 중 장 목사가 벗어둔 신발 속에 몰래 꾸깃꾸깃한 지폐를 넣어두곤 했다. 장 목사는 “목사를 향한 섬김이라기보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향한 사랑이 깊었던 분”이라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기도와 말씀, 예배를 중심으로 살았던 참 신자였다”고 회상했다.
이 권사 같은 헌신을 보기 어려워진 시대, 장 목사는 교회의 중심축인 30~50대 성도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 세대는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여러 역할을 동시에 감당한다. 그래서 쉽게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소진의 원인을 단순히 교회 일이 많아서라고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교회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세상살이에 먼저 지친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영적으로 다시 채워지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습니다.”
요즘 목회 현장에서 크게 체감하는 변화도 이 세대와 맞닿아 있다. 장 목사는 “3040 세대는 관계가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문화에 익숙해 처음엔 당황했다”고 말했다. 목회자와 성도 사이의 거리감이 줄어들고 표현 방식도 훨씬 직접적이고 평등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들의 방식이 자연스럽다는 걸 이해하면서 먼저 다가가려 했다”며 “격의 없이 소통하기 시작하자 성도들도 마음을 열었고, 그들이 예수의 제자로 자라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해법으로 종교개혁자들의 구호인 아드 폰테스(Ad-Fontes·기본으로 돌아가라)를 언급했다. 이어 “요즘은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고 있다. 이럴수록 다시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는 성경을 가르쳐야 하고 성경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성령께서 힘을 주신다”고 강조했다.
벌떼교회에는 ‘만천백 비전’이 있다. 평신도 리더 1만명, 선교사 1000명, 형제교회 100개를 세우겠다는 목표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구약 에스겔서 마지막 구절인 ‘여호와 삼마’를 꺼냈다.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다는 뜻이다. 장 목사는 “비전이 모두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며 “목회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함께 계셨다는 고백이 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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