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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납북미수과 진양군 제트기 추락사고 바다이야기프로그램 2025년 새해 벽두까지 대한민국을 침통하게 만든 무안공항 참사는 2024년 12월 29일, 제주항공 2216편이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도중 활주로를 이탈해 대형 폭발로 이어진 항공기 사고로, 대한민국 항공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1971년 1월에는 KAL기 납북미수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이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폭탄으로 위협하며 북으로 기수를 돌리라고 협박하는 과정에서 수습 조종사 전명세 씨의 기지와 희생으로 휴전선을 넘기 직전 강원도 고성군 바닷가 모래사장에 불시착, 승객을 모두 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 '하이재킹'이 지난해 제작 상영됐다. 같은 해 12 바다신게임 월 26일, 훈련비행 중이던 제트기가 당시 진양군(현 진주시) 봉강리 하곡마을 민가에 추락해 민간인 5명과 조종사 1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1명이 다쳤다. 이 사고로 민가 5가구 12채가 소실되고 황소 1마리가 불타 죽었으며, 기체는 폭발해 화염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안타깝게도 희생자들 대부분은 집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야마토게임다운로드 ◇7대 대선과 8대 총선이 던지는 것 올해 6·3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49.42%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는 2024년 12월 3일 국회 해산 및 국가비상입법기구 창설 목적으로 비상계엄이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4월 4일 현직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로 파면되었기에 조기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와 약 한 달 후 5월 25일 제8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김대중 신민당 후보의 남북교류론 등 획기적인 공약의 제시로 과거와는 달리 정책대결의 면모도 보여주었지만, 영호남 지역대결 구도가 처음으로 가시화된 선거이기도 했다. 94만여 표 차로 박정희 후보가 승리했지만, 한 달 후에 이어진 총선에서는 의외로 야당이 약진해 장기 집권에 대한 유권자의 견제 의지를 보여주었다. ◇첫발 내디딘 남북 적십자회담과 긴 공백 8월 12일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은 대한적십자사의 제의로 시작된 남-북 적십자사 간 회담으로 남북이산가족과 친척들의 주소 및 생사확인,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 자유로운 서신왕래,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과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 등 5개항의 의제에 대해 합의했다. 그러나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설전만을 계속하다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9월 13~16일 서울에서 제2차 본회담이 열려 3·4차 본회담 개최 일자를 합의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1984년 북한 수재물자 제의로 실무접촉이 재개돼 1985년 8·15 전후 상호 방문단 교환이 이뤄졌다. ◇실미도 난동이 던진 사회적 충격 8월 23일 발생한 실미도 난동은 684북파부대인 실미도 부대원 24명이 부대 내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탈출해 인천과 서울 일대에서 군·경과 교전 끝에 자폭하거나 사형당한 사건으로, 영화 '실미도'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북한무장공비가 송도로 침투했다며 노량진에서 서울 침투를 막기 위해 한강대교에 바리케이트를 치는 등 초긴장상태에 들어갔으나, 사건발생 10시간 만에 군특수범 소행임을 발표했다. ◇위수령 선포, 사법부 파동, 비상사태선언 1971년 7월 28일 발생한 사법부 파동은 서울지검 공안부가 시국사건 무죄판결을 내린 이범렬 부장판사 등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판사들은 이를 정권의 사법부 탄압으로 인식해 집단 사표를 제출했다. 전국 판사 455명 중 153명이 사표를 내는 등 대규모 집단행동이 벌어졌고, 여론이 악화되자 박정희 대통령이 법관 처우 개선과 수사 중지를 지시하며 사태가 진정됐다. 1971년 10월 15일, 박정희 정권은 서울 일원에 군을 동원해 교련강화 방침에 반발한 대학생들의 시위와 민주화 요구 확산에 학생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위수령을 발동했다. 위수령은 군이 특정 지역에 주둔해 치안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으로, 계엄령과 달리 국회가 해제를 요구할 수 없는 점이 특징이다. 1971년 12월 6일, 박정희 정권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대선과 총선 이후 여당의 기반이 약화되고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정권 유지를 위한 조치였다. 12월 27일 대통령에게 내정·외교·국방 등 전반에 걸친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법률이 제정되고, 이듬해 10월 유신과 유신체제의 도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반복되는 가뭄과 폭우, 그리고 산불 재해 올해 봄 산청 하동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10만 4000㏊의 산림 피해와 2만 2000마리의 가축, 1952㏊의 농작물 피해를 남겼다. 7월에는 산청, 합천, 의령, 진주 등지에 극한의 폭우가 쏟아져 인명피해와 함께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다. 1971년에는 가을부터 비가 내리지 않아 극심한 가뭄으로 식수원인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고 보리싹들이 말라붙을 정도였다. 12월 12일자 본보에 따르면 "진주지방에도 가뭄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넉달째 계속된 혹심한 겨울가뭄은 낙도지방의 식수와 농촌지역의 보리농사를 말라 붙혔는가 하면 이달에 접어들면서는 시내 변두리 및 농촌주민의 식수원인 우물도 바닥을 들어냈다"고 보도하고 있다. 옥봉동과 주약동 등지에서는 다른 곳으로 '물동냥'을 다녔으며, 진주시에서는 살수차를 동원해 식수를 공급하기도 했다. 진양호에 물이 줄어들자 투망이 아닌 유망으로 물고기를 마구 잡아 어족들의 씨를 말린다고 보도하고 있다. ◇낙후의 아픔을 알린 서부경남소외대책위 6월 24일, 본보는 전국 어느 지역보다 낙후된 서부경남의 개발을 위해 지역 언론이 나서 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도로교통, 관광개발, 산업경제 등 3개 분야로 나눠 서부개발 좌담회를 개최했다. 진주, 삼천포, 진양, 거창, 함양, 산청, 합천, 하동, 사천, 통영, 남해 등지의 자문위원과 상공회의소, 문화원장을 초청해 서부경남의 낙후 원인 조명과 분석, 향후 대책 등을 논의했다. 1면에 서부경남소외대책위원회 발기했음을 알리고, 사설까지 1면에 싣는 파격적인 편집을 감행했다. 2면에 논의 내용을 시리즈로 상세하게 보도해 지역민들에게 실태를 알리고 여론을 결집시켰다. 사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 6월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전국의 국토개발계획을 수립함으로써 경부고속도로에서 떨어진 서부경남은 경제발전 계획에서 소외돼 왔다. 71년 11월 25일, 부산~순천과 전주~순천을 잇는 366㎞의 남해안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착공된다. 박도준기자 |